함께 하다
나는 의논하는 것을 좋아한다.
의논을 하면서 서로가 가진 생각을 확인할 수 있고, 방향을 함께 할 수 있다.
함께 행동할 수 없더라도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리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내 생각을 상대에게 말하는 동안 나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나는 자주 모여서 회의를 하자고 한다.
회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단순하게 결정할 걸 왜 굳이 모여서 복잡하게 의논을 하고, 결정하느라 시간을 버리냐고 말한다.
즉, 시간이 아깝고, 서로 모이는 시간을 아껴서 각자가 맡은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작은 화분에 꽃을 심고, 내 방에 놓을 때에는 내 마음대로 하면 된다. 의논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내키는대로 결정해도 큰 무리가 없다.
한편,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거실에 화분을 놓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가족들의 의견이 필요할 수 있다.
가족들마다 좋아하는 식물이 다를 수 있고, 식물로 인해서 피로도를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이 어떤 회사이고, 기관이라면 의논은 꼭 필요하다.
특히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단체라면 더욱 관계자들이 함께 모이는 회의는 필수적이다.
큰 바퀴를 돌리기 위해서는 작은 바퀴들이 돌아가야 한다.
큰 바퀴는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
그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서 작은 바퀴를 맡은 사람들의 의견은 너무나 소중하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의 초기단계의 모습으로 보인다.
여기 저기서 개인과 단체의 목소리가 다양하다. 어떤 목소리는 너무 크다.
반대를 위한 반대의 목소리도 많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1993년 이후부터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본다면 이제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존중과 배려 '를 기반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의 단계는 '수평적 구조'만을 요구하고 있어 예의도 존중도 배려도 무너지고,
장마로 강물의 위아래가 뒤집어 지고 혼탁한 강물이 흐르다가 시간이 흐르면 맑아지듯이
우리에게는 그 시간이 필요하다.
도도히 흐르는 시간을 지탱할 사람들의 소신과 그를 유지하는 힘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 힘이란 게 별거 아니다.
그저 내 방식대로 이제까지 처럼 살면 된다.
다만 세상이 변해도 변화는 하고, 체질은 바꾸되 영혼까지 바꾸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