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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달팽이식당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5. 22. 23:03

몸이 따뜻해지는 요리,  마음이 훈훈해지는 이야기

  <해피해피 브레드>, <카모메(갈매기) 식당>, <심야식당> 등등  일본 영화나 만화는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제인 경우가 많다.  내가 그런 류(類)의 영화를 골라 보아서 그런 지는 모르겠으나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한결같이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일을 성스럽게 의식처럼 행하고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태도를 갖는다. 음식은 사람을 살리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기에 재료부터 만드는 과정과 방법, 담아내는 그릇까지 모두 자연과 연결되어 있어서 편안하게 여겨진다. 

 

  <달팽이 식당>은 오가와 이토 작가가 대학 졸업 후 10년 동안 습작만 하다가 마지막으로 혼을 담아 소설을 썼고 그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1973년 출생했고, <사자 간식>, <동백 문구점>,  <토와노 가든> 등의 작품이 있다.  (출처:https://ogawa-ito.com/works/)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니 집이 텅 비었다. 아무도 없는 빈 집이었다. 세탁기도 냉장고도 형광등도 커튼도 현관 매트도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이제 내게는 이 겨된장 밖에 의지할 것이 없다.'로 소설이 시작한다.  같이 살던 남자 친구가 모조리 가지고 가 버리고 남긴 건 열쇠뿐. 다행히 온도가 알맞아 소화전 안에 보관한 겨된장 항아리가 유일하게 남았다.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아 애용하던 겨된장이다.  충격은 몸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나는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내 목소리가 투명해졌다는 것을...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목소리만 내 몸의 조직에서 쏙 빠져나간 것이다. 라디오 음량을 '0'으로 둔 것처럼. 음악과 소리는 나오는데 밖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p.25) 목소리가 투명해진다는 건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바깥의 말을 거부하는 대신  선택한 일이 있다. '나는 내게만 들리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꼭.' 자신의 몸을 살리기 위해서는 주변의 위로와 격려가 아니라 저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래도 위안이 된다면 '겨된장'이 있고, 돌아갈 고향이 있고,  제대로 돌보지 않았지만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다. 

 

  겨항아리를 안고 10년 전에 떠나온 고향집으로 심야버스를 타고 간다.  거기서 술을 파는 엄마의 가게 '아무르' 옆에서 식당을 열기로 한다.  여러 나라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을 살리는 일이고 엄마가 요구하는 돈을 갚기 위해서다. 친절한 아저씨 구마씨의 도움으로 '달팽이식당'을 열었다. '그 작은 공간을 책가방처럼 등에 메고, 나는 지금부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와 식당은 일심동체, 일단 껍데기 속에 들어가 버리면 그곳은 내게 '안주(安住)의 땅'이다. (p.76)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할머니로부터 배운 것을 기억한다. '초조해하거나 슬픈 마음으로 만든 요리는 꼭 맛과 모양에 나타난단다. 음식을 만들 때는 항상 좋은 생각만 하면서, 밝고 평온한 마음으로 부엌에 서야 해.'(p.205) 주인공 링고는 맞선 보는 사람들을 위한 음식,  첩으로 살다가 남자가 죽자 검은 상복만 입고 사는 여인을 위한 음식, 엄마의 돼지 엘메스를 위한 음식, 구마씨의 시뇨리타를 생각하며 만든 음식 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하는 일을 한다. 누구보다 상처가 심하지만 거기에 매달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음식으로 위로하고 음식으로 축하하며 응원한다. 특히 성소수자 두 사람에게 배달된 결혼 축하 음식은 섬세한 배려와 감동을 주는 음식이 된다. 거기에 엄마의 결혼식을 위해 요리가 된 돼지 엘메스는 피 한 방울도 낭비하지 않고 알뜰하게 요리하여 축하 음식으로,  답례품으로 활용하였다. 

 

 자신이 남자 친구에게 버림받은 것보다 더한 충격은 엄마의 암 선고 소식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단두대처럼 내 목에 차가운 칼날을 들이댄다. 행복에 대한 기대의 실을 무자비하게 뚝 끊어놓는다.-그런데 그 순간, 하늘에서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졌다.'(p.210) 엄마의 엄마도 첩이었고,  '아무르'는 프랑스어 '아모르(사랑)'이 아니라 러시아의 강이름 '아무르'였다는 것 등등 엄마에게 가졌던 오해는 풀리고, 엄마는 세상을 떠난다. 엄마는 세상 다른 엄마처럼 '당당하게 살아라. 발을 땅에 딛고 크게 호흡해라.'라고 유언한다. 

 엄마가 죽고 달팽이 식당을 열지 못하고 지내다가 비둘기 요리를 해 먹고 목소리를 회복하고 엄마의 말처럼 당당하게 달팽이식당을 열기 위해 준비하는 링고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달팽이 식당>은 상처받고, 용기 잃은 사람에게 음식으로 위로와 격려와 사랑의 응원을 전한다는 설정이다.  남자친구의 배신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고향 마을에 적응하기 위해 식당을 만들고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리 멀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줄을 서지 않을까?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기 힘든 동화 같은 이야기라서 사람들에게 더 인기가 있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픈 과거가 있는 사람에게 위로를 전하는 주인공의 태도가 마치 자신에게 베푸는 친절로 여겨져서 독자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그럴지라도 음식과 친절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비법 중 하나가 분명하다.  누군가 상처받은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음식 이야기는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며 고향이야기는  친근하며 푸근하여 위로를 전한다. 이런 조건을 작가는 충분히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