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말하기를 배우다
니체의 말 -자신에 대하여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7. 31. 18:11
첫걸음은 자신에 대한 존경심에서
자신을 대단치 않은 인간이라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 같은 생각은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옭아매려 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맨 먼저 자신을 존경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을, 아직 아무런 실적도 이루지 못한 자신을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것이다. 자신을 존경하면 악한 일은 결코 행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손가락질당할 행동 따윈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이상에 차츰 다가가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타인의 본보기가 되는 인간으로 완성되어 간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능력이 된다.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스스로를 존경하라. -권력에의 의지-
자신에 대한 평판 따위는 신경 쓰지 마라
누구든 자신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한다. 자신을 좋게 떠올려 주기를 바라고, 조금은 훌륭하다 생각해 주기를 바라고, 중요한 인간의 부류에 포함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평판에만 지나치게 신경 써서 남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는 것은 좋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항상 옳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평가를 받는 경우보다, 그것과 완전히 상반된 평가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평단이나 평가 따위에 지나치게 신경 써서 괜한 분노나 원망을 가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 같은 일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실은 미움을 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장이다, 사장이다, 선생이다 하고 불리는 것에 일종의 쾌감과 인심을 맛보는 인간으로 전락하게 될지 모른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하루의 끝에 반성하지 마라
일을 끝내고 차분하게 반성한다. 하루를 마치고 그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하다 보면, 자기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결국에는 우울해지고 만다. 자신의 한심함에 분노를 느끼고 타인에 대한 원망이 생기기도 한다. 그것은 대개 불쾌하고 어두운 결과로 치닫는다. 이렇게 되는 까닭은 당신이 지쳐있기 때문이다. 피로에 젖어 지쳐 있을 때 냉정히 반성하기란 결코 불가능하기에 그 반성은 필연적으로 우울이라는 덫에 걸려들 수밖에 없다. 지쳤을 때에는 반성하는 것도, 되돌아보는 것도, 일기를 쓰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활기차게 활동하거나 무엇인가에 흠뻑 빠져 힘을 쏟고 있을 때, 즐기고 있을 때에는 어느 누구도 반성하거나 되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한심하게 여겨지고 사람에 대한 증오심이 느껴질 때에는 자신이 지쳐 있다는 신호라 여기고 그저 충분히 휴식을 취하라. 그것이 스스로를 위한 최선의 배려다. -아침놀-
지쳤다면 충분히 잠을 자라
자기혐오에 빠졌을 때, 모든 것이 귀찮게 느껴질 때, 무엇을 해도 도무지 기운이 나지 않을 떄,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 도박이나 종교에 심취해 볼까? 아니면 유행하는 긴장 완화요법을 기도해 볼까? 그것도 아니면 여행을 떠날까? 술을 마실까? 아니, 그 어떤 것보다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 뒤 깊은 잠을 청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법이다. 그것도 평소보다 훨씬 많이. 그런 후 잠에서 깨어나면 새로운 기운으로 충만해진 다른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아침놀-
자신을 표현하는 세 가지
자기표현이란 자신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룰 수 있다. 베푼다. 비난한다. 부순다. 상대에게 사랑과 자애를 베푸는 것도 자신의 힘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상대를 비방하고 괴롭히며 무시하는 것도 자신의 힘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가?- 아침놀-
누구에게나 한 가지 능력은 있다.
누구든지 한 가지의 능력은 가지고 있다. 그 하나의 능력은 오직 그만의 것이다. 그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충분히 살려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한 가지 능력 즉 자신의 본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힘만으로 그 능력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고, 세상의 반응을 살피며 자신의 본성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모색하는 사람도 있다. 틀림없는 사실은, 어떠한 경우라도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고 과감하게 그리고 꾸준히 도전해 나가면 언젠가는 자신만이 가진 한 가지 능력을 반드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자신의 주인이 되어라
착각해서는 안 된다. 자제심이라는 단어를 머리로 이해했다고 하여 어떤 일이든 자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제는 자신이 현실에서 행해야 하는 바로 그것이다. 하루에 한 가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자제를 각오하라. 최소한 그 정도의 일을 수월히 해낼 수 없다면 자제심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작은 일에 자제심을 발휘할 수 없다면, 큰 일에서도 자제심을 기대할 수 없고 성공에도 이를 수 없다. 자제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가슴속에 깃들어 있는 욕망을 스스로 제어한다는 것이다. 욕망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확고히 지배하는 주인이 되는 것이다. -방랑자와 그 그림자-
자신의 '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길은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방법론을 담은 책을 읽어도, 유명한 경영자나 억만장자의 성공 노하우를 배워도 자기 자신에게 맞는 방식과 방법을 찾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먹는 약 하나도 그 사람의 체질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하물며 타인의 삶의 방식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문제는 자신의 '왜?'에 대하여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자신이 왜 그것을 하고 싶은지, 왜 그것을 원하는지, 왜 그렇게 되고 싶은지, 왜 그 길을 가고자 하는지······. 그 같은 물음에 깊이 사고하지 않고 명백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왜?'라는 의문에 명백한 대답을 제시할 수 있다면 이후의 모든 것은 매우 간단해진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곧 알 수 있다. 일부러 타인을 흉내 내면서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이미 자신의 길이 눈앞에 명료히 보이기 때문에 이제 남은 일은 그 길을 걸어가는 것뿐이다. -우상의 황혼-
자신의 행위는 세계를 울린다
자신의 모든 행위는 다른 행위와 사고, 결단 등을 이끌어 내는 요인이 되거나 혹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떠한 행위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없다.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일단 발생한 현상은 항상 어떤 형태로든 다음에 일어나는 현상과 단단히 이어져 있다. 먼 과거 옛사람들의 행동조차 현재의 현상과 강하게 혹은 약하게 결부되어 있다. 모든 행위나 운동은 불변한다. 그리고 한 인간의 어느 작은 행위도 불변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 우리들은 영원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스스로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라
자신에 대하여 얼버무리거나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살지 말라. 자신에 대해서는 늘 성실하며, 자신이 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떤 마음의 습성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사고방식과 반응을 보이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을 잘 알지 못하면 사랑을 사랑으로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먼저 스스로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라. 자신조차 알지 못하면서 상대를 알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아침놀-
자신을 늘 새롭게 하라
과거에는 틀림없는 진실이라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잘못된 것으로 여겨진다. 과거에 이것만큼은 자신의 확고한 신조라 여기던 것이 이제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같은 변화를 자신이 어려서, 깊이가 없어서, 세상을 몰라서라는 이유로 그저 묻어두지 마라. 그 무렵의 당신에게는 그렇게 사고하고 느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수준에서는 그것이 지리요, 신조였다. 인간은 늘 껍질을 벗고 새로워진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생을 향해 나아간다. 그렇기에 과거에는 필요했던 것이 지금은 필요치 않게 되어버린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비판한 것, 타인의 비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자신의 껍질을 벗는 일과 다름없다. 한층 새로운 자신이 되기 위한 탈바꿈인 것이다. -즐거운 지식-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는 너그러우면서도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어째서 이 같은 일이 일어나는가? 스스로를 볼 때는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는 반면, 타인을 볼 때는 너무 먼 거리에서 윤곽만을 어렴풋이 보기 때문이다. 이 거리를 반대로 두고 차분히 타인을 관찰하면 타인은 그만큼 비난받아 마땅한 존재가 아니며, 자신은 생각만큼 너그럽게 허용할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러 가지 의견과 잠언-
신뢰를 얻고 싶다면 행동으로 보여라
자기 자신을 믿는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은 오히려 타인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 그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취해 있는 나르시스트이거나 자기애로 인해 자기 인식이 상당히 안이해진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약한 존재인지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다. 타인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말로 자신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피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에서의 진실하고 흔들림 없는 행동이야말로 타인의 믿음에 호소할 수 있다. -방랑자와 그 그림자-
해석의 딜레마
모든 일은 어떻게든 해석이 가능하다. 좋은 일, 나쁜 일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좋다, 나쁘다, 도움이 된다, 해가 된다. 훌륭하다, 추악하다······. 그 어떤 것이라도 해석하는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해석을 하는 순간부터는 그 해석 속에 자신을 밀어 넣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결국 해석에 사로잡히고, 그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시점에서만 사물을 보게 된다. 요컨대 해석 또는 해석에 기인한 가치 판단이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도록 옭아매는 것이다. 그러나 해석하지 않고서는 상황을 정리할 수 없다. 여기에 인생을 해석한다는 것의 딜레마가 있다. -농담, 음모 그리고 복수-
자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이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길 원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을 향해 던지고, 성실하고 확고하게 대답하라. 지금까지 자신이 진실로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자신의 영혼이 더 놓은 차원을 향하도록 이끌어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무엇이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기쁨을 안겨주었는가? 지금까지 자신은 어떠한 것에 몰입하였는가? 이들 질문에 대답하였을 때 자신의 본질이 뚜렷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 -쇼펜하우어-
늘 기분좋게 살아가는 요령
마음이 불쾌해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이룬 것, 자신이 창조한 것이 사람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여겨 언짢아하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빛나는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사회 속에서 생산적 존재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우울해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러한 사실로 비추어 볼 때, 늘 기분 좋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요령은 타인을 돕거나 누군가의 힘이 되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실감하고, 순수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주목받고 싶기에 주목받지 못한다
자기 현시욕, 말하자면 자신만을 내세우는, 자신만이 특별히 주목받고자 하는 욕망이다. 모임에 참석하면 이것이 또렷이 보인다. 어떤 이는 이야기나 풍부한 화젯거리로, 또 어떤 이는 기발한 의상으로, 어떤 이는 넓은 인맥으로, 또 다른 이는 자신의 고립으로 각자 자신만이 주목받길 꾀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계산은 착각이다. 자신만이 주목받을 주인공이요, 타인은 관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관객 없는 연극이 되어버리고 결국에는 그 누구고 주목받지 못한다. 때때로 인생에도 이 같은 일이 일어난다. 어떤 사람은 권력으로, 어떤 사람은 학력으로, 어떤 사람은 동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애처롭게 행동하며 각자 주목받으려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은 이룰 수 없다. 모든 이가 '나'외의 타인은 자신의 관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호기심에 휘둘리지 마라
주변이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마다 고개를 들이밀면 결국에는 공허해질 뿐이다. 역으로, 자신의 공허함을 어떻게든 채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수많은 일에 간섭하는 사람도 있다. 호기심은 자신의 능력을 꽃피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세상의 모든 일들을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오래도록 이어지지 않는다. 젊은 시절, 자신이 관계할 방향을 착실히 파악하고 그것에 전념하면 훨씬 현명하고 충실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방랑자와 그 그림자-
공포심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태어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4분의 3은 공포심에서 태어난다. 공포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미 체험한 적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여전히 힘들어한다. 하물며 그것은 아직 체험하지 않은 것마저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 공포심의 정체라는 것은 현재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에 달려있다. 그기로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이기에. -아침놀-
'무엇인가를 위해' 행동하지 마라
아무리 좋아 보이는 행동이라도 '무엇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은 비열하고 탐욕적이다. 누구를 위해서든 어떤 일을 위해서든 그것이 실패했을 때에는 상대 혹은 상황, 그 어떤 것의 탓으로 돌리려는 마음이 생기고,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때에는 자신의 실력 덕분이었다는 자만심이 싹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서만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순수하게 능동적인 사랑으로 행동할 때에는 '무엇을 위해서'라는 말도 생각도 결코 하지 않는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쉼 없이 노력하라
높은 곳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다. 비록 지금은 헛ㅅ된 장난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조금씩 정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오늘 그 정상은 아직 먼 곳에 있겠지만, 내일 좀 더 높은 곳을 향해 다가가기 위한 힘을 키울 수 있다. -방랑자와 그 그림자-
친구를 바라기 전에 자신을 사랑하라
가능한 한 많은 친구를 원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친구라 생각하고, 늘 어떤 친구와 함께 있지 않으면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는 것은 당신이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는 증거다.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바란다. 자신을 상대해 줄 친구를 절실히 바란다. 막연한 안도감을 찾아 누군가에게 의지한다. 왜 그런 것일까? 고독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친구를 아무리 많이, 그리고 폭넓게 가졌다고 해도 고독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할 수도 없다. 그것은 단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엇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걷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에는 분명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고통이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내 집을 지을 곳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자신에게 맞는 국가를 찾을 것인가? 언제까지 광활한 대지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집을 지을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방황할 것인가? 그보다는 강인하면서 온화한 곳을 자신의 조국처럼 삼아 그곳에 자신의 집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 도시의 혼잡 속에서든 적막 속에서든, 강인하면서도 평온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곳이 바로 내 집을 세울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안심하고 지낼 수 있다. -아침놀-
풍요로움은 스스로에게 있다
동일한 것을 상대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부터 한 두 가지 정도의 것밖에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것은 보통 능력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 사람은 대상물에서 무엇인가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물에 의해 촉발된 자신 안의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내고 이끌어내는 것이다. 결국 풍요로운 대상물을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자신의 능력을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요, 인생을 풍요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즐거운 지식-
*<超譯 니체의 말> 사라토리 하루히코 엮음-1장 자신에 대하여에서 발췌하여 기록한다. 니체가 왜 책 읽기의 끝으로 귀결이 되는지를 니체를 읽어본 사람은 안다. 불교의 인연(因緣)처럼 처음과 끝을 너무나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어서 니체가 손꼽힌다. 군더더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