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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순례주택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5. 30. 17:32

공유 주택의 모델, 순례주택
작가 유은실은 <내 이름은 백석>을 비롯해 <일수의 탄생> 등 다수의 동화를 쓴 작가다. 2010년 <멀쩡한 이유정>이 IBBYHONOUR LIST에 선정되었다. 작가는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순례주택』은 2022 평택 ᄒᆞᆫ책 읽기 목록 중의 한 책이다. 읽고 나니 『불편한 편의점』의 염여사와 김순례여사가 오버랩이 된다. 염여사는 편의점으로 여러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김순례여사는 순례주택에서 여러 사람을 살린다.
본명을 김순례(順禮)에서 김순례(巡禮)로 개명을 하고,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는 김순례여사가 주인공이다. 입출금 통장에 천만 원이 넘으면 안 되기에 999만9,999원이 넘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베푼다. 싫어하는 세 가지는 썩지 않는 쓰레기,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 쓰고 남은 돈이다.
순례씨가 좋아하는 건 배우는 것, 독서, 그 중 교과서 읽기를 좋아한다. 순례씨는 어려운 말은 앞 글자만 말하는 버릇이 있어서 순례어라고 하고 통역이 필요하다. 통역은 이 글을 이끌어가는 오수림,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맡아서 한다.
순례씨의 이름을 따서 지은 <순례주택>은 생활 수칙이 있다. 옥탑방, 옥탑 정원, 와이파이는 공용이다. 계단 청소는 월2만원, 분리배출은 제대로 해야 한다. 추가된 수칙 하나는 학번 물어보지 않기다.
순례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김순례씨와 시간강사 허박사님, 노인요양보호사 홍길동(군자씨), 미장원 원장님 조은영씨, 하는 일을 알 수 없는 영선씨 등이 서로 도우면서 살아간다.
공용 공간인 옥탑방은 김순례씨가 라면을, 홍길동씨가 김치를, 박사님은 청소를, 영선씨는 원두커피를 제공하여 서로 공유하는 공간으로 유지된다.
순례주택은 공용 주택으로서의 모델이기도 하다. 많은 공간을 개인이 차지하는 것에서 나아가 서로 공유하면서 나누는 공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순례주택에 입주하는 가족들, 오수림이 1군이라고 말하는 시간강사 아빠, 주부 엄마, 고등학생 미림이 언니는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로 빌라촌 사람들과는 또다른 세상의 사람들이었다. 할아버지 사업으로 망하면서 <순례주택>의 일원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어른은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최측근인 수림이와 순례씨가 나누는 대화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누가 누가 더 어린가>내기라도 하듯이 늙은 부모가 차를 뽑아줬다, 애들 학원비 줬다, 매달 생활비를 받는다고 말하는 아파트 모임 사람들과 달리 독립적인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건강한 노동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내 친척이다, 먼 친척이다.” 오수림이 열받을 때 외우는 주문에서 왠지 측은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철부지 부모를 둔 열여섯 살 딸이 외우는 주문이라서 말이다. 그러나 75세의 김순례씨가 있는 한 오수림은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철부지 엄마, 아빠를 철들게 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교훈적인 내용이 강하게 읽혀서 아쉽기는 하지만 요즘 이렇게 <누가 누가 더 어린가>를 내기처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목욕탕 때밀이를 해서 번 돈으로 때 탑을 쌓아 올려 지은 <순례주택>. 그 건강한 노동의 대가를 사람들과 나누고 사는 김순례씨를 만날 수 있다는 건 한창 목마를 때 마시는 시원한 물처럼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