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말하기를 배우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2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5. 19. 16:35

리더는 사잇꾼

 

리더는 사잇꾼이다. 라이벌의 어원은 RIVER다. 큰 조직은 작은 조직의 모험 정신을, 작은 조직 큰 조직의 시스템을 배우며 수시로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해야 한다. 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터페이스 INTERFACE다.

분리하면서도 이어주는 목! 머리와 가슴을 잇는 목, 손과 팔을 잇는 손목.... 디지로그와 생명자본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목이 막히지 않고, 사이가 편안한 상태다. 코로나는 문명과 자연의 사이가 나빠서 왔다. 나쁜 사이 뭉친 목을 풀어줘야 세계가 잘 굴러간다.

 

21세기의 리더, 인재는 어느 조직이든 이쪽과 저쪽의 사이를 좋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조직은 망하지 않는다. 개발부와 영업부, 두 부서를 오가며 서로의 요구와 불만을 살살 풀어주며 다리 놓는 사람, 그 사람이 인재고 리더다. 리더라면 그런 ‘사잇꾼’ 되어야 하네.

 

탄생과 죽음

 

죽음은 돌아간다고 말한다.

죽음의 장소는 탄생의 그곳이다. 죽음과 달리 탄생은 관찰이 가능하다.

 

2-3억 마리의 정자의 레이스를 통해 내가 왔다. 엄마, 아빠, 조부모...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36억년 전 진핵세포가 생겼던 순간까지 간다.

 

진화론자의 의견에 비추어보면 내 존재는 36억 년 원시의 바닷가에서 시작됐다. 어찌보면 과학은 환상적인 시(詩)다. 내가 과거 물고기였을까....

 

태아 형성과정을 보면 아가미도 물갈퀴 자국도 선명하게 보인다. 그렇게 계산하면 내 나이는 사실 36억 플러스 여든일곱 살이다. 엄청난 시간을 산 거다. 죽음에 가까이 가고서 나는 깨달았다. 죽음을 알려고 하지 말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과거로 가서 미래를 본다!

왜 외가에 가면 가슴이 뛸까? 왜 외갓집 감나무는 열린 감조차 더 달고 시원할까? 그게 미토콘드리아는 외가의 혈통으로만 이어져서 그렇다. 거슬러 가면 저 멀리 아프리카의 어깨 벌어진 외할머니한테서 내가 왔는지도 몰라. 이렇게 한발 한발 가면서 느껴지는 게 신의 존재다. 최초의 빅뱅은 천지창조였구나......

 

과학을 잘 모르면 무신론자가 되지만, 과학을 깊이 알면 신의 질서를 만난다. 죽음이 아닌 탄생을 연구하면서 선생은 자신만만해졌다.

“쫄지 마.”

 

동양의 탄생학과 서양의 유전학은 동시에 말한다. 뱃속에서 10개월이 성격, 기질, 신체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스승이 10년 가르친 게 뱃속에서 가르친 10개월만 못하다. 그래서 지혜로운 한국인은 태중의 아이를 이미 한 살로 본다. 그 사실을 프로이트, 칸트, 헤겔이 알았겠는가? 그러니 쫄지마! 프로이트는 돌팔이다. 다만 인간의 에고를 구조적으로 봤다는 데 의의를 둔다. 인격은 다층적이라 의학뿐 아니라 인문학자의 상상력으로도 봐야 한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방대한  인류 역사를 꿰뚫는 통찰력을 모두 옮겨 담을 수는 없다. 내가 여기 옮겨 쓴 것을 이해할 지도 의문스럽다. 블로그에 옮겨 쓴 이유는 오래토록 읽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