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방망이 깎던 노인
정갈한 매무새의 외할머니 같은 향기나는 글

윤오영선생의 <방망이 깎던 노인>은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네 컷 만화로 처음 보게 되었다. 빨리빨리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살다보니 현기증마저 나는 세상인데 방망이 하나 깎는데 정성을 다하는 노인이 있다니. 그게 40년 전의 일이라고 회고하는 선생의 글이 언젯적에 쓰였는지는 몰라도 그 정성 깃든 행위가 무척 반가웠다. 요즘은 아이스크림 하나 사려고 해도 가게 앞에 우뚝 서 있는 키오스크를 통과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은행에서 돈을 찾으려 해도 ATM기계 앞에서 씨름을 하거나 몇 정거장 버스를 타고 은행 지점을 찾아가서 또 몇 시간은 앉아서 줄을 서다가 번호표가 불리면 그제서애 제 돈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윤오영선생의 글은 단정하게 쪽을 지어 은비녀를 꽂고 모시 옷을 곱게 입은 외할머니를 만난 기분이다. 사람은 외가 쪽으로만 미토콘드리아가 이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외갓집이 친가보다 더 푸근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친할머니들은 친손주가 예쁘지만 어쩌겠는가? 미토콘드리아가 엄마 쪽으로만 흐른다니. 모계사회가 얼마나 과학적이고 보편타당한 결과였는지 밝혀지는 말이 아닌가?
<방망이 깎던 노인>은 수필집으로 25편의 수필이 실려 있다. 저자가 1928년부터 보성고교에서 20여년간 교사 생활을 하고 1959년부터 본격적으로 수필을 썼다고 한다. 다소 길기는 하지만 만화로 보고 감동 받은 <방망이 깎던 노인>의 전문을 옮겨 적어 본다.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난 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가는 길.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방망이를 한 번 사가지고 가려고 깎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이게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이제 다 됐으니까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 하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 되나.”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 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자 시간이 없다니까.” 노인이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고만 지쳐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깎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방망이는 다 깎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와야 하는 나는 불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따위로 장사를 해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수염에 내 마음이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면 배가 너무 부르면 힘들어 다듬다가 옷감을 치기를 잘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가 쉽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기竹器는 혹 대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대리면 다시 붙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죽기는 대쪽이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죽기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부레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약재藥材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숙지황熟地黃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길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증구포九蒸九曝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 쪄낸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다섯 번을 쪘는지 열 번을 쪘는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 않는데 아홉 번씩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미술품을 만들어냈다.
이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는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 그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를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채국동리하彩菊東籬下다가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북어자반을 뜯고 있었다. 전에 더더북어를 방망이로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다듬이질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擣衣聲”이니 위군추야도의성 爲君秋夜擣衣聲“이니 애수哀愁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방망이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윤오영, <방망이 깎던 노인> 중 ‘방망이 깎던 노인’ 전문-
작가는 1960년대를 살았던 인물이니 거의 60년 전의 생활상과 두 세대 전의 조상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60년 전부터 노인을 홀대하는 풍조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느 민족이나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민족은 오래 살아남을 수 없는 법이다. 서양에 의해 지배당하고 나서 서양의 문물은 받아들였지만 지지 않으려는 자존심 같은 오기로 높이 올리고, 빨리 따라 잡기에만 몰두하다 보니 옛 것은 모두 방해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작가가 늙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떻게 늙어가고 싶어하는 지를 알 수 있는 글이 아래의 글이다.
올해 85세의 노인이건만 머리 하나 아니 세고 정정할 뿐 아니라, 옛 모습 그대로였다. 물론 80이 넘은 상노인이 옛 모습일 리야 만무하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그 곱게 매만진 머리, 깨끗하고 날렵한 몸매, 안상하고 조용 나직하며 애정이 깃들인 말씨, 그 단아한 옷매와 몸가짐, 노인답게 흉허물 없으면서도 몸에 밴 교양 있는 예의. 나는 그와 말하는 동안 어느 젊은 여성에게서보다도 여성과의 對坐대좌를 느꼈으며, 나도 모르게 여성에 대한 남자의 자세를 의식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여든이 넘은 그는 아직도 여성을 잃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늙음 속에 젊은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돌아오면서 아마 이 노인이 현대에 남아있는 마지막 존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것이, 옛 선비 방에서 봤던 오동나무 연상硯床이다. ....오동나무에 제길이 들어 까맣고 부드럽게 윤이 나는 그 아름다움. 소박한 나뭇결에 부드러운 대팻손이 그대로 길이 들어 닳고 닳은 그 아름다움.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이 스며들게 하는 것이었다. -오동나무 연상硯床 중에서-
요즘도 찾아보기 힘든 단아하게 늙어가는 여성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선생도 알고 있었다. '이 노인이 현대에 남아있는 마지막 존재일 것이라고.' 선생은 '늙음을 길들어 닳고 닳은 그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늙음의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이 스며들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지금 60년이 지나서 보는 <방망이 깎던 노인>, 이 글도 글 속에서 방망이를 다듬던 그 노인을 다시 만난 것 같은 정서를 전해준다. 글이 정갈하고 매무새가 미끈하여 손댈 데 없이 아름다운 수필집으로 보인다. 요즘 정서와는 다른 이전 세대의 정서도 반갑고 푸근하기만 하다. 외갓집 서재에서 발견한 책 같은 정다움이 묻어있는 책이다. 오래 곁에 두고 자주 읽고 싶은 책이다.
범우사에서 이런 문고판을 아직도 출간하고 있음에 감사드린다. 손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문고판이 참 반갑다. 여행 갈 때 소장하고 가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