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수요일(시 큐레이터)
안도현 시<스며드는 것>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3. 18. 16:28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시 <스며드는 것>전문-
산업이 발달한다는 건 보이기 싫은 장면과 과정은 감추고 상품만 보이게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시골에서 마당에 닭을 키우다가 어느날 할아버지가 닭을 잡아서 삼계탕을 끓이는 날이면 아이는 내가 모이주던 닭 꼬꼬가 없어졌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단백질 공급이 어려웠던 시절이니 엄마가 차린 삼계탕 백숙은 국물까지 다 먹었었다.
요즘 우리는 닭은 치킨으로 구입하고, 슈퍼에 가서 포장된 상태로 구입하니 그 과정을 알지 못하는 도시인이나 아이들은 그저 과자 한 봉지 사듯이 닭을 사고, 고기를 살 뿐이다. 이런 단절된 장면들이 사람을 더 탐욕스럽게 만들고, 감정도 메마르게 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TV홈쇼핑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꽃게장!
식탁에 놓인 꽃게장을 바라보면서 시인이 말한
"불끄고 잘 시간이야."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일 것이다. 이 말이 얼마나 슬픈가? 이 시를 본 이후로 게장을 먹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게장을 보면 이 시가 생각난다.
다른 이들도
이런 시선으로 바라본 꽃게장, 쉬이 먹지는 못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