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수요일(시 큐레이터)

김사인 詩 <조용한 일>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0. 11. 18. 14:55

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저 바라볼 길 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시 <조용한 일> 전문-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는 그림 한편을 보고 있는 것처럼 머릿 속에 장면이 떠올랐다.

아, 시가 이렇게 그림처럼 그려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해 보았다.

나도 시를 읽고 그림을 그려본다.

 

  해가 지고  정원에 있는 벚나무 아래 벤취에 나와 앉는다.

  날은 맑고, 바람은 선선하고, 사방은 조용하다.

  온종일 시달린 머리를 식히는 중이다.

  눈을 감으면 바람의 흔적이 아주 작게 느껴진다.

  집 앞 호수에 비친 달을 보며 물멍에 빠져든다.

   그저 멈춘 시간처럼 평화롭다.

   그럴 때  가만히 나뭇잎이 하나 떨어진다.

   우연히도 내가 앉은 벤취의 옆에 내려와 앉는다.

   나는 그 나뭇잎을 바라만 본다.

   나뭇잎은 그저 존재 자체로 내게 위안이 된다.

   나무가 보내준 위로의 손짓으로 보이지만 어떤 말도, 몸짓도 없이 그저 있을 뿐이다.

   그저 그대로 있어 주는 것이 고마운 일이다.

   '너 왜 이러고 있어?'

   '무슨 일 있어?'

   '청승맞다.'

   '내가 도와 줄까?' 가 아니라서.

 

  요즘 낙엽들이 산책길에, 길가에, 공원에, 맥문동 위에, 화단에 내려앉았다.

자연의 변화에 어찌 해 줄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으로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내 곁에서 그냥 그렇게 있어 주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무를 보면 계절의 변화를 가장 빨리 읽을 수 있다. 지금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그자리, 그 모습으로 보이지만 1년 전에 있던 나무가 아니다.  제 발치에 오롯이 쌓아둔 나뭇잎들은 싹 틔우고, 가지를 자라게 하고, 잎들을 키우고,  나무를 키운 기록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다.

 

 그러니 그저 즈려 밟고 다닐 일이 아니다.

바스락 바스락 밟을 때 마다 소리내는 나뭇잎

나무를 키운 역사의 기록,  나뭇잎

나무가 지낸 1년의 역사를 기록한 생생한 낭송을 귀 기울여 들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