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5. 6. 26. 17:32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각나는 일들이 걱정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내가 생각한 대로 안 되면 어떡하지?' 류의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진다.
“나는 왜 이렇게 걱정이 많은 걸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 앞에서 나는 늘 긴장한다.
사람들과의 약속, 새로운 일을 맡게 될 때, 심지어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머릿속에서는 순식간에 수많은 시나리오가 상영된다.
대부분은 비극이다.
혹시 실수하면 어쩌지?
그 사람이 나를 오해하면 어쩌지?
이번 일도 잘 안 되면 어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걱정과 손을 맞잡는다.
가끔은 내가 걱정을 하는 것인지,
걱정이 나를 끌고 다니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현대인의 불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왜 이토록 걱정이 많을까? 급변하는 세상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끊임없이 던져준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불안감을 키우기도 한다. 완벽을 요구하는 사회적 기대와 불확실한 경제 상황은 우리를 늘 긴장하게 만든다. 이처럼 걱정과 불안은 현대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림자와 같다. 어쩌면 걱정은 더 이상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다.
걱정은 나름의 효용이 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한 예방책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 오늘의 숨을 막아버린다. 생각해 보면, 내가 그렇게도 걱정했던 일들 중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토록 불안해하던 일도, 막상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었네" 싶은 일들이 태반이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특별한 일이 계획된 날은 늘 그렇듯이 반복되는 걱정, 걱정, 걱정, 바로 그 걱정이 걱정이다.
그러니 요즘은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지금 이 걱정, 꼭 해야 할까?"
"걱정을 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나는 내 걱정에 규칙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걱정이 떠오르면 바로 그 생각이 올라온 걸 알아채는 것이다. 그리고는 걱정이 스쳐가도 “지금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라며 조용히 보내준다. "에잇, 그냥 일어나서 뭐라도 시작하자!"라고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계속 같은 걱정이 뭉게뭉게 피어오를 땐 종이에 써본다. 글자로 적힌 걱정은 머릿속에서 공중부양하던 괴물이 아니라 내가 마주할 수 있는 작은 문제로 바뀐다. 그러면 바로 답이 보인다. 답이 없는 문제는 "아님 말고!"라고 넘겨버린다.
걱정을 다스리는 지혜로운 말들
걱정에 대한 지혜로운 말들은 많다. '걱정은 흔들의자와 같다. 할 일은 많지만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는 서양 속담은 걱정의 무익함을 일깨운다. 또한 '걱정은 내일의 슬픔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힘을 앗아간다'는 코리 텐 붐의 말처럼, 과도한 걱정은 현재를 잠식한다. 이처럼 걱정은 미래를 위한 준비가 아닌, 현재를 갉아먹는 독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을 조금씩 더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별 탈 없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
어찌 보면 꽤 괜찮게 살아낸 날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했다.
걱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에게 내 마음의 전부를 내어줄 필요는 없다.
걱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내가 살아갈 하루,
내가 숨 쉴 이 순간을 지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잘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걱정을 달고 사는 누군가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오늘만큼은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 편히 살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