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교사의 정치기본권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5. 6. 17. 19:05
교사의 정치 기본권,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
“교사는 아이만 가르치면 되지, 정치 얘기를 왜 해?”
"교사도 시민인데 교사도 정치에 참여해야 하지 않아?"
오래전부터 교사는 정치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말이 자연스레 통용돼 왔다. 교육은 중립적이어야 하며, 교실은 정치적 논쟁과는 무관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한 지금, 교사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와 교육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교사의 정치 기본권 보장을 둘러싼 논의는 단순한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초등학교에서 오랜 시간 아이들을 가르쳐 온 사람으로서 나는 누구보다도 교사의 현실을 가까이서 지켜봐 왔다. 교육 정책은 장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수없이 바뀌었고, 그 여파는 항상 교사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작 교사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된 적은 거의 없어서 수동적으로 정책을 수행해 왔다. 정책이 불합리하더라도 문제를 지적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기조차 조심스러운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정치적 발언이 징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교사는 침묵을 선택하게 되고, 그 사이 교육 현장의 목소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유네스코의 권고(1966년 교원 지위 권고 등)는 교사가 일반 시민이 누리는 정당 가입, 선거 출마 등 정치적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교사의 정치적 자유가 사실상 전면 금지되어 있다. 교사는 참정권(투표권)은 보장되지만, 정당 가입, 선거 출마, 정치 집회나 시위 참여, 정치 기부 등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징계나 직위 해제까지 당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16세 이상 학생은 정당 가입 및 당비 납부가 가능하고, 18세 이상은 선거 출마도 가능하다. 반면, 교사는 그 이상의 권한을 얻기 위해서는 교단을 떠나거나 정치 활동을 포기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 법에 의하면 초. 중등 교육을 관장하는 교육감 출마하고자 할 때 대학 교수는 연구년, 안식년 등의 형태를 띤 휴직을 활용하여 출마할 수 있으나 초·중등 교원은 전직이나 퇴직을 해야만 교육감 출마가 가능하다. 대학교수에게는 아주 유리한 구조인 반면 초·중등 교원에게는 매우 출마하기 어려운 구조다. 그래서 초·중등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초·중등 교원 출신의 교육감이 거의 없고, 교육에 전혀 문외한인 정치인들이나 대학교수 출신들이 대거 선출직 교육감으로 출마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교사의 정치 기본권이 보장된다면 교사들의 교육 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가 더 활발해질 수 있다. 교사는 누구보다도 교육 현장을 잘 알고 있고, 직접적인 당사자로서 실질적인 개선을 이끌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또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가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모순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교사가 정치 참여를 통해 민주시민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은 학생 교육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정치 기본권 보장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정치가 교실 안으로 스며들 위험에 대해서는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 아직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의 아이들에게 특정 정당이나 정치적 견해를 강하게 드러내는 교사의 태도는, 교육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 학부모나 동료 교사와의 갈등도 학교 공동체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 결국 교사의 정치 참여는 자유와 함께 절제와 책임이 뒤따를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첫째, 교사의 정치 활동은 근무 시간 외, 학교 외 공간에서 이뤄져야 한다. 둘째,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정치적 표현이나 활동은 명확히 금지해야 한다. 셋째, 선거 출마 등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원하는 경우에는 일정 기간 ‘정치 휴직’을 가능하게 하고, 낙선 시 복직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교사를 대상으로 한 정치적 윤리 교육과 중립성 교육을 정례화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학교 내 모든 정치 활동은 금지해 교육 공간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
독일에서는 1976년 정치교육 교사, 전문가 회의를 통해 Beutelsbach(베우텔스바흐) 합의문을 작성했다. 첫째, 학생이 독자적 판단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특정 정치적 의견을 강제로 주입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둘째, 정치·학문적으로 논쟁이 있는 주제는 수업 안에서도 균형 있게 다뤄져야 한다. 셋째, 학생이 정치적 상황을 분석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파악하여, 직접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독일 연방 및 주(州) 공립교사는 공무원(Beamte) 신분이기 때문에, 자유민주 기본질서를 수호할 의무가 헌법적·법률적으로 부여된다. 수업 중 특정 정당이나 극단주의적 견해(인종차별, 반민주주의 등)를 일방적으로 선전하거나 홍보하는 행위는 징계 사안이 된다. 정치 기본권 보장은 교사의 엄격한 자기 통제가 기본이며 균형 잡힌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수라는 의미다.
아이들에게 “네가 살아갈 세상은 네가 만들어가는 거야”라고 말하는 교사로서, 우리는 스스로도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 권리는 선택이고, 그 선택은 책임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와 교육은 반드시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사가 시민으로서 깨어 있고, 교실에서는 교육자로서 절제된 태도를 지킬 때, 두 영역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이제는 교사에게도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 권리가 교육을 망치는 도구가 아니라, 교육을 지키는 힘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진정한 교육은 교사의 침묵 속에서가 아니라, 책임 있는 참여와 성찰 속에서 자라난다. 국회의원, 교육감, 시의원 등의 선거 출마 시 휴직 후 낙선이나 임기 만료 후 복직, SNS 정치 참여 가능, 정당 가입 가능 등의 부분은 열어두되 수업 시간에 개인적인 정치 편향을 강요했을 경우 엄격하게 처벌하는 방식으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외워서 답 쓰는 교육이 아닌 살아있는 교육을 위해서 정치교육은 가장 중요한 영역일 수 있다. 다만 학생들의 교육과 관련되기 때문에 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정치교육의 방법적인 면을 신문에서 찾았다. 학교에서 반권위주의 교육, 비판 교육, 저항권 교육 등 정치 교육을 강조하는 것이나 권력의 억압에 '저항하는 능력', '사회적 불의에 '분노하는 능력',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민주시민의 3대 능력으로 비중있게 가르치는 일도 중요하다.(2025. 6. 18. 김누리칼럼, 한겨레신문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