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글쓰기-물.흙.불.바람/2025 글쓰기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뽑는 선출직 공직자, 한능검심*으로 검증하자!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5. 6. 2. 17:00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뽑지만, 검증은 어디에 있는가
2025년 6월 3일, 내일은 대한민국 제22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광장의 열기와 유세장의 함성이 어느 때보다 뜨겁지만, 정작 그 열기 속에서 조용히 묻혀버리는 질문이 하나 있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검증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은 주요 공직자 중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 등 일부만을 국민이 선출한다. 전체 공무원 중 선출직의 비율은 낮은 편이지만, 문제는 그 소수의 선출직이 행사하는 권한은 매우 크다는 데 있다. 특히 대통령과 같은 최고 통치자는 헌법과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다. 그런데 이 막중한 자리를 맡을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누가 더 유명한가”, “누가 더 말을 잘하는가”, “어느 정당을 등에 업었는가”**에 머무는 현실이라면, 우리는 과연 그 선택에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교육의 수장인 교육감 선거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교육계 경험 없이 이름만 알려진 이가 당선되기도 하고, 교육 철학보다 정당과의 거리가 더 이슈가 된다. 심지어 “학교보다 선거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교직 사회에서 농담처럼 회자될 정도다. 교육 현장을 이끄는 이조차 검증 없이 뽑는다면, 대통령과 장관, 지자체장 선거라고 해서 그 상황이 크게 다르리란 보장은 없다.
이쯤 되면 물어야 한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도 되는가?
정치인은 한 나라의 방향을 결정하고, 수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자리다. 그런 정치인이 역사에 무지하다면 어떻게 될까. 분단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안보를 이야기하고, 민주주의의 성취를 체험하지 못한 채 자유를 말하고, 지역 갈등의 뿌리를 모르고 통합을 외치는 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도자가 이끄는 정치는 방향 감각을 잃은 항해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혹시 특정 대학교 출신( 서울대) 혹은 외국의 이름있는 학교를 졸업한 정치인을 선호하고 있지는 않은가? 외국의 대학을 졸업한 것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인가? 우리가 정치에 대해 가진 환상으로 인해 늘 우리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문제의식에서 우리는 제안할 수 있다. 적어도 주요 선출직 공직자에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단계 수준의 역사 이해를 요구하자. 이는 시험점수로 사람을 평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정치인의 자격을 묻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미 다수의 공공기관과 교원 임용, 고위 공무원 선발 과정에서 이 시험은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대 흐름의 이해, 제도의 변천, 사건 간 인과관계와 비판적 해석 능력 등 정치에 필요한 역사 감각을 갖췄는지를 묻는 도구로 손색이 없다. 국민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그 선택이 가능하도록 공적 검증 기준도 병행되어야 한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주관하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단계는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 받아야 합격이다.
물론 “선출직은 국민이 판단한다”는 원칙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판단에도 기반과 기준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기본 자질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채로 ‘유권자의 선택’만 강조되는 구조는, 오히려 유권자를 정치적 연극의 관객으로 만들 뿐이다. 선택은 책임이지만, 검증 없는 책임은 방임이 될 수 있다. 정치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 모든 과정의 토대는 역사에 있다. 정치인이 역사에 무지한 사회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도 이유를 찾지 못한다. 우리가 뽑은 지도자가 공동체의 기억을 모른 채 현재만을 소비한다면, 우리는 미래를 도둑맞는 셈이다.
영국의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는 “정치인은 국민 위에 서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앞서 읽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삶을 앞서 읽기 위해선, 그 삶의 궤적을 꿰뚫는 눈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역사이고, 그 역사에 대한 이해가 정치의 시작점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절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절차 안에서 얼마나 잘된 선택이 가능했는가, 그것이 민주주의의 품질을 결정한다. 내일, 우리는 또 한 번 선택의 순간에 선다. 그 한 표 앞에서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검증된 사람에게 투표하고 있는가?”
*한능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과정(1~3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