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수요일(시 큐레이터)
[시 읽는 수요일 2025-15주] 심도기행(고재순)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5. 4. 12. 23:49
연미정 높이 섰네 두 강물 사이에
삼남지방 조운길이 난간 앞에 통했었네
떠다니던 천 척의 배는 지금은 어디 있나
생각건대 우리나라 순후한 풍속이었는데.
-화남 고재순(1846~1916), 심도기행(1906)-
강화도에 다녀왔습니다. 강화도의 옛 이름이 심도였다고 하네요. 고려시대에 몽고군의 침략으로 왕이 강화도로 피난을 갔었지요. 조선시대에는 강화도령 철종이 살던 곳이지요. 순무김치와 밴댕이, 강화섬쌀, 속노랑고구마, 강아지떡(우리 강아지(자식) 먹이려고 만든 떡) 등등 유명한 게 많더군요.
120여개의 돈대(초소) 중에 월곶돈대라는 곳에 갔었습니다. 강 건너가 김포, 또 다른 바다 건너가 북한이더군요. 삼남(전라, 경상, 충청) 지방에서 올라오는 배들이 이 길을 통해서만 한강을 거슬러서 서울에 닿았다고 합니다. 연미정이라는 정자는 한강의 물줄기가 두 줄기로 갈라지는데 그 모양이 제비꼬리와 닮았다 하여 지형의 이름을 본따 지은 이름이었습니다. 연미정 옆에 큰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는데 한 그루가 태풍에 꺾여서 부러졌으나 부러진 한쪽에서 다시 잔 가지가 뻗어서 생명을 잇고 있었습니다.
1906년이면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태롭고 정치인들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다투었으며 백성들은 앞날을 걱정하고 있던 때였지요. 생각해 보니 그 때나 지금이나 나라의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은 듯 많은 부분이 닮아있네요. 역사를 돌이켜 보면 나라는 정치인이 지키는 게 아니고 일반 백성들이 제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의 역할을 수행해 나가면서 지켜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고재순 님이 말한 대로 '순후한 우리나라'는 온순하고 정이 두터우며 날씨가 적당하게 따뜻하고 좋은 나라입니다. 그 땅에 사는 우리의 삶도 순후(淳厚)하면 좋겠습니다.
어떤 학자는 2030년 이전에 한국과 북한이 통일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독일의 통일처럼 우리나라의 통일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너무나 시시한 방식으로 통일이 될 것 같습니다. 북한과의 거리가 1.6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강화도에 가 보니 북한에서 피난 와서 주저앉은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소리치면 들릴 것 같이 가까운 북한 땅을 앞에 두고 평생을 살다 돌아가신 분들이 많겠지요. 어떤 때라도, 지금이라도 통일은 되어야지요. 언제나 희망은 희박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사람을 살게 하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