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5. 1. 12. 22:29
동네 주변의 목욕탕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다 벗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1인용 목욕시설로 바뀐다는 말을 들으니 추억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싶던 차에 집 앞의 목욕탕에 자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목욕탕을 안 좋아하는데도.
목욕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가격은 어른 기준 1만 원이다. 돈을 내면 여성에게는 수건을 두 장 준다. 남자는? 그냥 들어간다. 왠고하니 남자는 수건이 남탕 안쪽에 비치되어 있다는 말이다. 여성은 수건을 여러 장 쓰기 때문에라는 고정관념에서 그런지, 물어보지 않았으니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누군가가 여성의 수건 사용량을 1인당 두 장으로 정했는가 보다. 한 가지 더 있다. 여성들은 드라이기를 사용할 때 돈을 200원 넣게 되어 있다. 그 또한 왠고하니 여성들이 머리카락이 좀 길어야지. 전기요금이 많이 드는가 보다. 이 또한 불문율처럼 굳어져 있는데도 다들 불평하지 않고 지키고 있었다. 여탕에는 머리 감는 샴푸도 비치되어 있지 않다. 이 또한 여성들이 많이 써서 그런 건지 여성들이 취향이 달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그 또한 남탕과는 다르리라.
지난 번에는 200원을 준비해 가지 않아서 무료로 제공되는 선풍기로 머리카락을 말렸다. 정수리 부분과 뒷머리는 잘 마르지 않으니 개운하지 않다. 집에 돌아와서 꼼꼼하게 다시 드라이기를 사용했다. 드라이기를 사용하는 돈을 바꿔 써도 되는데 나는 현금을 준비하지 않았으니 드라이기 사용을 못했던 거다.
오늘 다시 동네 목욕탕에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집에 쓰지 않고 오래 묵혀두었던 400원을 준비했다. 200원은 나의 머리카락을 말리기 위해 썼다. 남은 200원은? 누군가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드라이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드라이기 근처에 놓고 왔다. 누군가 그 200원으로 머리를 말리라고. 드라이기를 무료로 쓰지 못한다고 불평을 하는 마음, 이건 불평등하니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 불편함을 나누자는 의미다. 참 200원을 나누면서 말이 길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