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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4. 12. 18. 16:43
문미순작가의 작품으로 제19회 세계문학상수상작이다. 701호와 702호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금 겨울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고 있는데 이 두 집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겨울을 혹독하게 지내고 있다.
701호에 사는 명주 엄마는 치매를 앓면서 이혼하고 힘들게 살던 명주의 도움으로 지내다가 76세에 혼자 죽음을 맞이했다. 노령연금과 유족연금 100만 원가량을 받아 같이 지냈었다. 연금수령자인 엄마가 죽었으니 명주는 잠시동안 엄마 연금을 자신이 쓰기로 하고 죽은 엄마를 미라로 만들어 관 안에 넣고 작은 방에 두고 겨울에도 에어컨을 켜고 살충제, 탈취제를 뿌리면서 냄새를 없애고 지내지만 엄마를 기억하는 이들로부터 흔적을 다 지울 수는 없다.
702호 준성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버지 병수발을 하고 있다. 낮에는 아버지의 수족이 되어 보살피고 밤에는 대리기사로 일한다. 그러다 비싼 외제차에 사고를 낸다. 빚은 점점 늘고 아버지는 버겁다. 화장실에서 부축하는 손을 놓치는 사고로 아버지가 죽자 자책하며 어쩔 줄 몰라한다. 준성이는 명주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를 미라로 만든다. 달랑 임대주택 한 채 있어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혜택을 받지 못하고 돌볼 가족 때문에 돈을 벌 수 없지만 국가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택한 것이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 일이다. 아니 죽음을 처리하지 않고 미루는 선택을 한다.
명주가 엄마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두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이지만 작가는 독자를 설득하며 왜 이런 선택을 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독자는 명주와 한 패가 되어 시체를 감추고 싶다. 준성과 명주의 부모들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들을 돌보던 유일한 가족인 명주와 준성은 부모들의 주검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엄마의 고향으로 떠난다. 글의 제목이 말하듯이 '우리가 겨울을 지나 온 방식'은 준성과 명주의 독백 같은 말이다. 그들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고, 그들의 트럭 위에 함께 한 할머니는 명주와 준성의 타인을 돌볼 줄 아는 마음에 기댄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삶을 결정하고, 살아내려는 발버둥에 독자로서 두 사람을 응원하게 한다. 같은 처치였던 대리기사 동료들에게서 외제차 수리비 청구하는 주인에게 맞설 용기를 얻는 장면은 그동안 마음 졸이며 준성을 응원하는 독자에게 쾌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국가가 해결해 주어야 할 돌봄의 책임이 해결되지 못하고 보살피는 가족마저도 피폐해지는 모습은 현실적이다. 부모 돌봄을 위해 동시에 자신의 삶이 멈춰버린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서로 할 말이 많은 주제다. 그러나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 왔다. 돌봄 주체가 죽기 전까지. 그게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가족을 돌보는 자식에게 돌봄 수당 같은 제도가 없으니 24시간 대기조다. 언제든 내가 달려가 돕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가 부모다. 사회가 감당해 주지 못하고 개인이 도맡아야 하는 간병의 문제, 매달 내는 대리기사의 보험금을 빼돌리는 회사, 대리 운전 중 사고처리로 또 다른 빚을 떠안게 되는 대리기사, 함께 제주도 가자고 돈을 모은 남자노인과 죽은 엄마의 이야기, 엄마의 고향으로 두 시신을 장롱처럼 감싸서 이사하는 트럭에 올라타 준성을 놀라게 한 또 다른 할머니 이야기들은 우리의 이웃의 일이고 우리의 일이다. 저자는 독자를 공범으로 만든다. 책을 읽는 동안 경찰이 법으로 이들을 단죄하려고 하지 않기를 바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