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4. 12. 6. 18:41

  이런 설문을 받는다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성함"이라는 말은 주로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함이 높은 사람에게 주로 높여서 쓰는 말이다.   교육부에서 만든 늘봄학교 2025년도 신청하는 설문에 사용된 문장을 옮겨온 것이다.  이 문장을 심각하게 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현실을 반영하기에 잠시 시선을 멈춘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단체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거침없이 말한다.  개개인이 행복해야 전체 사회가 행복하다는 설정에서 그 논리는 매우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단지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위에 제시한 문장과 같은 형식의 논리이다.  "고객님,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 우리가  높임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었고,  요즘 좀 제 자리를 찾아간다 싶었는데  위의 문장을 보니 높임말이 갈 곳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 

 

" 자녀의 이름을 기록하십시오. " 혹은  "당신의 자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귀 가정의 자녀의 성함"이라고 적는 것은 "손님은 왕"이라는 잘못된 자본주의 논리가 가져온 웃지 못할 현실 반영이라 씁쓸하다.  공공기관을 상대로  "내가 누군 줄 알고?" 하는 식의 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의 시달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읽는 것 같다.  공무원 9급 시험에 합격하려면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는가? 그런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작성한  것인데 '이름, 성명'이라는 말이 높임말이 "성함" 이라는 걸 몰랐을 리 없다. 

 

  높임말을 많이 쓴다고 해서 우리의 품격이 높아질 리 없다.  예닐곱 살 된 아이의 이름을 "성함"이라고 적는 오류를 범하게 만드는 사회는 살기 힘들다.  높일 건 높이되 낮출 건 낮추고 균형을 찾고 싶다.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존중하는 건 맞다.  그러나 높임을 하는 사람은 높임을 받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다.  높임을 하는 사람이 어딘가에서 높임을 요구하지 않을까? 일전에 일본의 문화에 대한 시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호스티스 바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호스트바에 가서 돈을 쓰기 위해 돈을 번다는 내용이다.  어딘가에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욕구.  비약이 심했다.  그렇지만 높임말이 쓰일 곳을 몰라 헤매는 세상은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는 말은 남기고 싶다.